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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한국영화 명당 정보 / 줄거리 / 결말(스포O)

by 앙쏘 2023.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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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이영화의 상영시간은 126분이며, 2018년 09월 19일에 개봉하였습니다.
평점은 7.75점이며, 208만 명이 상영하였습니다.
감독은 박희고 님이며, 주연은 조승우, 지성, 김성균, 문채원, 유재명, 박충선, 백윤식 님입니다.
조연은 이원근, 강태오, 태인호, 전신환, 조현식, 정재헌 님입니다.

 

줄거리

효명 세자(김민재)가 내의원에서 올린 탕약을 먹고 피를 토하며 죽습니다.
이후 순조가 명당자리에 효명세자의 능을 조성하려고 하는데 지관 하나가 흉지라면서 반대를 합니다.
하지만 나머지 신료, 지관들은 명당이라고 주장해서 결국 효명세자는 이곳에 묻힙니다.
간언을 올린 지관 박재상(조승우)의 집에 친구인 구용식(유재명)이 찾아옵니다.
술을 마시던 용식과 재상은 뒷산에 가서 볼일을 보는데 그 사이 장동 김씨가 보낸 사병들이 재상의 집을 불태우고 가족들을 참살합니다.
뒤늦게 온 재상은 통곡합니다.

13년 후, 박재상, 구용식은 같이 지관 일을 하면서 영업을 해서 돈을 벌고 있고 모은 돈으로는 장동 김씨의 묘 위치를 알아내려고 하지만 성과가 없습니다.
한 번은 기생 집에서 돈을 쓰면서 기생들에게도 부탁을 해봤지만 이를 알고 온 기생집 대방 초선(문채원)이 김좌근(백윤식) 대감이 단골이라면서 우리 애들 경치게 만들 일 있냐면서 쫓아냅니다.
지관의 집에 찾아와 장동 김씨 묫자리를 알려달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흥선군(지성)이었습니다.
둘은 타도 장동 김씨의 대의 하에 친구가 됩니다.

박재상, 흥선군 그리고 흥선군과 같이 온 왕족 이원경(강태오)을 통해서 국왕에게 장동 김씨의 수작으로 효명 세자가 흉지에 묻혀있음을 고하고 옆의 명당에는 김좌근의 아버지 김조순이 묻혀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왕은 내금위 병사들을 대동하고 야밤에 부친의 묘를 파묘했는데 관 안에는 물이 차 있고 뱀들이 있었고 시신은 물에 잠겨서 썩고 있었는데 박재상이 명당이라고 한자리를 파보니 김조순이 묻혀 있었습니다.
궁녀들을 통해 이 사실을 들은 김좌근은 자신에게 책임을 모두 넘기고 발을 빼려고 하는 관료들을 모두 숙청하고 입궐해서 죄를 청하였는데 사실 자기 수족들을 대동해서 국왕을 협박하는 거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왕은 김좌근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조용히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는 걸로 끝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재상, 흥선군은 김조순의 묘뿐만이 아니라 장동 김씨 가묘들을 모두 찾아야 한다고 결심하지만 김좌근의 집안 내부를 알려준 사람이 바로 기생집 대방 초선이었습니다.
초선의 부모는 장동 김씨의 횡포로 땅과 목숨 모두를 잃었고 갈 곳이 없던 자기를 흥선군이 도와줘서 지금의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박재상이 너무 티 나게 정보를 모으고 있어서 일부로 기생집에서 내쫓은 것이었습니다.
그런 박재상을 흥선군에게 알려준 것도 모두 초선이었습니다.

박재상은 아버지의 새로운 묫자리를 찾으려는 김좌근의 시험에 일부러 응시를 하고 숨겨진 보물고에서 묘도를 찾는데 성공을 합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는데 바로 장동 김씨의 조상 묘들은 왕릉이었습니다.
장동 김씨는 왕릉을 파묘한 다음 국왕의 관위에 조상들의 관을 임장하고 다시 덮어버린 것입니다.
이 사실로 박재상, 흥선군은 장동 김씨를 더더욱 파멸시키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고 이 사실을 글로 쓴 다음에 화살로 묶어서 국왕에게 전달을 합니다.

분노한 국왕은 대낮에 내금위 병력을 이끌고 김좌근의 집에 쳐들어갑니다.
김좌근은 국왕에게 조카 왔는가?라면서 반역죄를 저지르는데 국왕이 대동하고 온 내금위 병력들이 모두 칼을 뽑아서 국왕을 겨눕니다.
국왕은 망연자실해서 김좌근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김좌근은 그런 국왕에게 국왕이 미신에 홀려서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책망을 하고 왕비 뱃속에 있는 세자의 안위를 운운하면서 협박을 합니다.
국왕은 결국 굴복을 하고 장동 김씨의 묘도를 훔진 죄로 홀로 진 이원경은 고문을 받다가 죽습니다.

장동 김씨에서도 김조순의 새로운 묫자리를 찾으려고 동분서주합니다.
장동 김씨가 극비로 보호를 하던 지관 정만인에게 다시 연락을 해서 새로운 명당자리를 찾아달라고 요구를 하는데 정만인은 이미 김조순의 시신은 파묘를 해서 꺼냈기 때문에 부정을 탔다면서 부정을 덮으려면 강력한 기운을 가진 명당인 이대천자지지지에 대해 얘기를 꺼냅니다.

초선을 통해서 박재상, 흥선군도 이 사실을 알게 되는데 흥선군은 자기는 정확하게 사실인지 알아야겠다면서 박재상을 채근합니다.
박재상은 전국을 둘러봤지만 이대천자지지같은 건 없다면서 단언을 합니다.
초선은 김병기를 통해서 정만인을 만나러 갑니다.
정만인은 자기를 찾아온 김병기에게 김조순의 시신은 너무 부정을 타서 이대천지지에 매장을 해도 효과가 없다면서 아예 새로운 인물을 매장하고 직접 왕이 되라고 하면서 김병기에게 패륜을 권합니다.
그리고 초선에게는 입조심만 하면 왕후가 될 상이라면서 그런데 입 때문에 망할 거라고 경고를 합니다.

 

결말

김병기 일행이 떠나고 초선을 미행하던 흥선군 일행도 정만인의 거처를 급습해서 정만인을 납치합니다.
정만인의 말을 따라서 아버지 김좌근을 목 졸라 죽인 김병기도 정만인이 납치된 걸 알고 초선을 고문하는데 초선은 자결을 택하고 이를 보고 모른체하던 흥선군은 정만인을 다그칩니다.

흥선군은 사실 처음부터 장동 김씨의 파멸이 아니라 자기 권좌가 목적이었습니다.
자기가 권자를 차지하려면 권력자인 장동 김씨를 파멸시켜야 해서 장동 김씨 파멸에 뜻을 둔 박재상과 협력한 것입니다.
정만인은 말 통하는 상대를 만났다면서 흥선군과 이대천자지지로 가고 박재상은 말리려다가 실패합니다.
뒤늦게 이들이 있는 곳에 온 김병기는 남아있던 박재상을 다그치고 박재상은 말하지 않지만 구용식이 이대천자지지의 위치를 말하고 김병기와 이대천자지지로 같이 갑니다.

이대천자지지는 바로 가야사였는데 땅의 강력한 기운을 막으려고 과거에 사찰을 지었던 것입니다.
흥선군 일행은 승려들을 다 내쫓고 불을 지르려 하고 간발의 차로 도착한 김병기 일행이 이를 막아섭니다.
김병기를 제압한 흥선군인 이대천자지지를 차지하고 김병기는 그렇다면 현재 왕묘는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 하고 흥선군은 동의합니다.
그 순간 김병기의 사주를 받은 의관들에 의해서 헌종이 독살됩니다.

흥선군은 이를 알고도 묵인한 것입니다.
박재상은 친구라고 믿은 흥선군에게 사정하면서 2대에 걸쳐 왕이 나왔지만 그 뒤에는 어떻게 될 것 같냐면서 그곳은 나라를 망하게 할 흉지라고 절규합니다.
하지만 흥선군은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가야사를 불태운 흥선군은 그 자리에 남연군의 묘를 씁니다.
그 옆에서 땅, 묘에 대해서 설명하던 정만인은 이제 자신이 와룡봉추아니냐 하는데 흥선군은 정만인 자네 조상들 자시를 명당이냐 묻습니다.
천하 장안이 휘두른 쇠몽둥이에 맞은 정만인은 죽고 시체는 강에 버려집니다.
새로운 임금이 즉위하고 흥선군은 그 아비로 권자에 오른고 박재상의 말대로 2대 만에 장손이 끊기고 나라도 망했습니다.

실의에 빠진 박재상의 집에 김병기가 찾아옵니다.
복수를 하고 싶으면 내 몸뚱이 밖에 줄 게 없다는 박재상에게 김병기는 흥선군에게 복수해야 하지 않겠냐며 아버지 묫자리를 알아봐달라 하고 박재상이 정해준 곳에 김좌근을 모십니다.
박재상, 구용식은 이제 사람을 묻을 곳이 아니라 사람을 살릴 터를 찾으러 가자며 떠납니다.

십 년 뒤 하루가 다르게 기울어가는 가세에 김병기는 지관 여럿을 불러 모아 아버지의 묫자리를 봐 달라 하는데 지관들은 묫자리를 보고 당황합니다.
묫자리는 물이 흘러들어가 관이 부서지거나 시신이 유실될 곳이라 말합니다.
김병기는 수하들을 불러 묘를 파보았지만 지관들 말처럼 관은 없어져있었습니다.
김병기는 땅을 더 깊이 파보라 하지만 이미 늦었고 박재상은 이렇게 장동 김씨에 대한 복수를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경술국치를 지나서 일제강점기가 흘러가고 있을 때 양복 차림의 젊은 남자 둘이 노년의 박재상을 찾아갑니다.
이들은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서 젊은이들을 가르칠 학교를 세우려 한다면서 명당자리를 찾아봐 달라 합니다.
박재상은 지도에서 간도 땅을 가리키면서 적지라 추천해 줍니다.
박재상의 옆에 있던 구용식은 이야기를 듣고는 그동안 모은 재물, 땅문서를 학교 짓는데 쓰라며 주고 학교 이름도 지어야 하지 않겠냐며 박재상은 새로운 기운으로 흥하는 곳이라며 학교 이름을 신흥이라 지어줍니다.
1911년 설립된 신흥무관학교는 1960년 경희대학교로 명칭을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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